https://youtu.be/7q6r3Zd4MXg?si=vhldpPVkhuk3juWC
이 세상에는 주관적으로 믿고 있는 상대적인 진리와 절대 변하지 않을 궁극적 진리가 있습니다. 이 궁극적 진리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모든 상대적인 진리와 진실은 다 진리이다입니다. 이 말의 뜻은 그것이 무엇이든 믿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진리이다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비록 사실이 아닐지라도 믿는 동안은 그 사람의 진실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내가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의 진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우주에는 그것이 진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진리는 진리이다.'가 바로 궁극적인 진리이자 최상의 진리라 할 수 있습니다. 객관적인 사실이 있는데 어떻게 그 반대의 것을 믿는 것이 진리가 될 수 있나 반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객관적인 사실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설사 존재한다 하더라도 누군가의 시각에서 바라보게 되는 순간 그것은 곧장 주관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물론 객관적인 듯한 자세, 태도는 취할 수 있지만 순수하게 전적으로 객관적인 관점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림에서 보듯 (영상 참조) 달리는 자동차는 어떤 위치에서 관찰하느냐에 따라 움직이는 방향이 각각 다르게 보입니다. A에게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차가 움직이고 B에게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이릅니다. 누가 맞고 틀렸을까요?
어떤 사람에게 생선회는 최고로 맛있는 음식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최고로 역한 음식이기도 합니다. 누가 맞을까요? 둘 다 진실로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것이 진실이면 저것은 진실이 아니다.'가 '아니라 이것과 저것이 동시의 진실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인정하게 되면 바로 지금까지의 틀을 깨는 의식을 가지는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진리란 일상에서 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말로 표현이 안 될 정도로 심오한 것이기에 함부로 논할 수 없다.'라고 한다면 이것 역시 그 사람의 진리인 것입니다.
'영혼이나 신, 비물질적 세계는 망상이며 물질만이 존재하는 유일한 실체이다.'라는 사람과 혹은 천동설을 믿는 사람에게도 그것은 진리입니다. 내가 받아들인 진실은 그것만이 유일한 진실로 보일 수 있습니다. 자가 생존의 능력을 가진 믿음의 힘이 그렇게 여기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존재하는 진리는 다 진리이다.'라는 것을 인정하면 나에게 자유가 생기게 됩니다. 수많은 진리들 중 내가 선호하는 진리를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유 그리고 다른 사람 역시 그들이 선택한 진실을 믿을 수 있도록 허락하는 자유를 주게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유를 허락하지 않으면 나 역시 자유를 가질 수 없습니다. 수감자와 교도관은 모두 갇혀 있다 여기는 같은 진동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이러한 현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의견과 추측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나의 진실로 자리하게 됩니다.
만일 내게 '이것은 내가 선호하는 믿음은 아니지만 진실이기에 바꿀 수 없다.'는 믿음이 있다면 그것이 정말 사실인지 잘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나는 내가 선호하는 진실을 추구하고 그 효과를 알리며 '이러한 진실도 선택할 수 있다.'제안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그들이 내 제안을 선택하고 안 하고는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내가 말하는 진리가 '힘이 있고 도움이 된다.'여기는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이끌리게 되어 있습니다. 강요로 누군가를 매료시킬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더 밀어내게 됩니다. 조롱으로 누군가가 믿는 진실의 가치를 폄훼하거나 그들이 선택한 방법으로 그들의 인생을 탐구하려는 것을 비난하는 것은 강요와 같습니다.
조롱과 비난은 허용하지 않는 마음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강요나 논쟁으로 자신의 믿음이 맞다고 설득하는 것은 오히려 그 자신도 스스로 선택한 그 진리의 힘을 믿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해서 설득하고자 하는 대상은 상대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일 뿐입니다.
진실로 자신이 선택한 진리의 힘을 믿는다면 누군가를 설득할 필요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