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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의 영상에서는 꿈이 물질적 현실보다 오히려 더 나의 본질에 가까운 실재라는 것을 알아보았는데 오늘은 가위눌림과 악몽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위눌림
가위눌림이란 수면 마비라고도 하는데 잠을 자다 의식이 들었을 때 몸의 근육이 마비된 듯 움직여지지 않는 경우입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대표적인 것으로는, 고차원으로의 의식 이동이 일어나는 찰나, 육체적 의식으로 돌아오는 바람에 순간 우리의 의식이 마치 물질계와 영계 사이에 낀듯한 현상이 발생한 것이라고 합니다.
마치 한 발은 물질계에 다른 발은 고차원계에 들여놓은 듯한 상태라는 것이죠. 우리의 육체적 의식은 물질계에서 익숙한 모양으로 움직이려고 하지만 이미 반쯤 넘어가 있는 고차원에서는 그러한 육체적 움직임이 통하지 않기에 움직임 자체가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비물질적 혹은 물질적 고차원 존재와의 컨택트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육체가 과민하게 반응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마비시키는 경우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꿈과 유체이탈은 의식이 몸을 떠나는 것이 아니지만, 의식의 전환 혹은 확장이 이뤄진 상태입니다. 즉, 의식의 초점을 더 이상 육체에 두지 않는 상황이 된다는 것입니다. 육체가 의식의 통제 없이 움직인다면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육체에도 육체만의 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안전을 위해 전환된 의식에 육체가 과민 반응 혹은 오작동하지 못하도록 고차원 존재들이 육체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 같은 조치 없이 육체가 의식의 통제 없이, 혹은 육체만의 의식으로 움직인다면 이것이 바로 몽유병의 한 현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몸이 마비되는 듯한 와중에 무섭고 두려운 존재를 봤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은 보통 나를 도와주려는 고차원적 영적 존재들이지만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미 겁먹은 육체적 의식이 스스로 투사해 낸 두려움의 일환일 수 있습니다.
만일 이들 존재가 실제로 아스트랄계의 저 차원에 있는 진동이 낮은 존재라 하더라도, 이들은 내 두려움의 투사와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의 진동이 그들 진동과 매치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우리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나를 본다는 건, 그래서 어떠한 형태로든 상화작용이 일어나는다는 것은 내 진동이 그들만큼 낮다는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악몽
악몽은 그 자체가 나쁜 꿈이 아니라 평소 우리의 '어느 믿음 체계가 부정적이며 그로 인해 발생한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주 큰 힌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꿈의 장소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고차원적 아스트랄 세계는 우리의 표면 의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많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표면 의식이 평소에 알고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상징과 의미를 총동원해 이 꿈에서의 경험을 나름대로 묘사하고자 하지만 이 와중에 많은 간섭과 왜곡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가령 괴물에게 쫓기는 꿈을 꾼다고 했을 때, 꿈에서 그대로 이 현실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꿈에서의 어떠한 상황을 우리의 의식적, 무의식적 두려움을 반영하게 되는 것입니다. 괴물이 상징하는 것은 나를 괴롭히는 상사일 수도 있고, 나 자신이 가진 어떠한 이슈일 수도 있으며 여기서 우리는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정적 믿음 체계의 하나인 에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역시 악몽의 한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평소 에고를 소멸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면 에고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사라질 거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게 됩니다. 이런 에고는 영성 에고로 자신을 교묘히 숨기고 있다고 해도 의식이 꿈에서 보다 높은 고차원에 접속이 되었다 육체 의식으로 돌아올 즈음에 에고는 이 상태를 죽음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제는 정말 내가 죽는구나. 나는 여기서 꼼짝도 않을 테야. 그러니 너도 아무 데도 갈 수 없어"
물론 에고는 독립적인 의식이 아니며 육체를 가진 의식의 나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에고를 나에게서 분리시켜 놓은 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입니다.
우리는 평소에 에고를 "너와 나는 영원히 하나야. 내가 어디로 가든 무슨 경험을 하든 너는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나의 한 부분이야"라는 말로 안심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에고는 의식이 확장될 수 있는 나라는 것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꿈에서 에고가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비명을 지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평소에 에고를 나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고 통합하여 조화를 이루고 있다면 에고는 안심하고 고차원적 세계에서도 이질감을 덜 느끼고 잘 따라오게 됩니다.. 부정적 믿음체가 적을수록 또 에고가 협조적일수록 이러한 고차원적 꿈의 경험도 부드럽게 이어질 수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현실이라는 또 다른 꿈으로 돌아오는 장점도 생길 것입니다.
우리의 평소 믿음 체계가 내면의 존재 즉, 본질적인 나와 가까울수록 조화와 균형을 이룬 상태이기에 꿈 역시 이것을 반영하나, 우리의 본질과 멀어진 믿음 체계일수록 고차원의 경험을 더 두려운 것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그러니 악몽이나 가위에 눌리는 경험이 많다면, 그것을 회피하고 물리치려는 수단을 찾기보다는 우리의 내면을 잘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몸을 이완하고 특별한 명상을 하는 것 등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는 해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우리가 외면하고 치워버리려고 할수록, 악몽은 횟수가 줄기는커녕 더 강도도 높아지면서 우리의 삶에 계속 머무를 것입니다. 악몽은 우리를 괴롭히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도와주려고 하는 것이기에 그 사실을 알아봐야 할 것입니다.
악몽은 "너가 반드시 들여다보고 바꿔야 할 부정적인 믿음 체계가 있다. 이 믿음 체계는 진정한 네가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기에 진정한 네 자신을 보도록 해라"라고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입니다. 문을 두드리는 이 신호를 지속적으로 무시하고 외면한다면 더 크고 더 강하게 계속 두드릴 것입니다.